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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적 기호와 연산 법칙

by I Seul Bee

0과 음수가 수로 받아들여진 과정은 단지 ‘대응하는 사물이 있는가’라는 한 가지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표기법, 계산 관행, 방정식의 해로서의 지위, 그리고 수가 무엇인가에 대한 관념이 여러 시대와 전통에서 서로 다른 속도로 변했다. 대수학의 발달은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였다. 이 글에서는 대수가 구체적인 수치를 다루는 절차에서 문자와 연산 규칙을 다루는 학문으로 확장되어 간 과정을 살펴본다.

영어 ‘algebra’는 알콰리즈미의 책 제목에 포함된 아랍어 al-jabr에서 중세 라틴어를 거쳐 유래했다. al-jabr는 흔히 ‘복원’ 또는 ‘완성’, al-muqābala는 ‘맞세움’ 또는 ‘대비’로 번역된다. 방정식 풀이에서는 결손되거나 감산된 양을 복원하고 양변의 같은 종류 항을 맞세워 줄이는 절차와 관련된다.

말로 쓴 방정식에서 기호로

칼리프 알마문 재위기(813–833), 통상 820년 무렵으로 잡히는 시기에 바그다드의 학자 알콰리즈미(al-Khwārizmī)는 “복원과 맞세움에 의한 계산의 간결한 책”(Kitāb al-mukhtaṣar fī ḥisāb al-jabr wa-l-muqābala)을 저술했다. 이 책은 뿌리, 제곱, 단순수를 조합한 방정식을 여섯 가지 표준 유형으로 분류하고 각 유형의 풀이 절차를 말로 설명한다. 그 가운데 한 예를 요약하면 이렇다. 어떤 제곱과 열 개의 뿌리를 더하여 서른아홉과 같다면, 열의 절반인 다섯을 제곱한 스물다섯을 서른아홉에 더한다. 그 합 예순넷의 제곱근 여덟에서 다섯을 빼면 셋이 남는다. 이를 현대식으로 옮기면 \[ x^2+10x=39 \] 이고, 알콰리즈미가 허용한 양의 크기 가운데 해 \(x=3\)을 얻는다. 현대 대수에서는 또 다른 근 \(-13\)도 얻지만, 음의 근은 당시 이 문제의 수량 해석 범위에 들어가지 않았다.[Khwarizmi1831]

알콰리즈미의 설명은 현대의 \(x^2\), \(+\), \(=\) 같은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 주로 말로 전개된다. 미지량은 ‘뿌리’(jidhr), 그 제곱은 māl이라고 불렸다. 이러한 서술 양식을 후대 수학사에서는 흔히 수사적 대수(rhetorical algebra)라고 분류한다.

알콰리즈미의 일반성은 임의의 계수를 문자로 놓은 하나의 공식에 있지 않았다. 그는 방정식을 여섯 유형으로 분류하고, 각 유형에 수치 예와 기하학적 정당화를 제시한 뒤 같은 절차를 그 유형의 다른 문제에도 적용했다. 즉, 알콰리즈미의 수학에서는 문제 유형의 체계적인 분류와 반복 가능한 말의 규칙 자체가 구체적인 값의 예를 넘어서는 일반성을 담고 있었다.

여기서 시간상으로는 알콰리즈미보다 앞선 사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확한 생몰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흔히 서기 3세기 무렵으로 추정되는 알렉산드리아의 디오판토스(Diophantus)는 “산술”(Arithmetica)에서 미지량과 그 거듭제곱, 뺄셈 등에 축약 표지를 사용했다. 미지량인 arithmos에는 흔히 \(\varsigma\)처럼 인쇄되는 축약 표지를, 그 제곱인 dynamis에는 \(\Delta^{\Upsilon}\)를 사용하는 식이다. 이는 현대적 자유변수 체계라기보다 반복되는 명칭을 줄여 쓴 표기였으며, 계수는 해당 거듭제곱 표지 뒤에 놓이고 덧셈은 대개 항의 병치로 나타났다.[ChristianidisOaks2023]

후대 수학사에서는 이러한 양식을 축약 대수(syncopated algebra)라고 불러 왔다. 디오판토스는 주어진 수치에서 출발해 양의 유리수 해를 찾는 문제를 주로 다루었으며, 비에트처럼 주어진 양 자체를 임의의 문자로 표시해 계산하는 체계적 문자계수 표기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수사적, 축약적, 기호적 대수’라는 삼분법은 네셀만(G. H. F. Nesselmann)이 1842년 “그리스인의 대수학”(Die Algebra der Griechen), pp. 301–306에서 제시한 뒤 널리 쓰인 역사서술상의 분류다. 네셀만 자신도 단계 사이의 경계가 선명하지 않고 전환이 점진적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디오판토스는 후대의 아랍어 수사적 대수보다 앞선 시대의 인물이다.[Nesselmann1842][Heeffer2009]]

미지량의 이름을 축약하는 것과, 아직 값이 정해지지 않은 주어진 양까지 문자로 나타내어 함께 계산하는 것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전자의 문자는 대개 한 문제에서 찾아야 할 양을 지시하지만, 후자는 주어진 양의 값이 정해지기 전에도 그들 사이의 관계를 연산할 수 있게 한다. 16세기 말 비에트는 미지량과 미정의 주어진 양을 서로 다른 문자로 체계적으로 표시함으로써 이 두 번째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비에트, 종의 계산

프랑수아 비에트(François Viète, 1540–1603)는 법률가이자 왕실 관료로 일하면서 수학과 천문학을 연구했다. [그는 앙리 3세와 앙리 4세 아래에서 왕실 고문을 지냈으며, 프랑스 측이 입수한 에스파냐 암호문을 해독한 일로도 알려져 있다.[Panza2006]] 그는 1591년 “해석술 입문”(In artem analyticem isagoge)에서 미지량뿐 아니라 아직 값이 정해지지 않은 주어진 양도 문자로 나타내는 표기 체계를 제시했다. 미지량에는 A, E, I, O, V, Y 같은 모음을, 주어진 양에는 B, G, D 등 자음을 배정했다.[Viete1591][Oaks2018]

[오늘날 \(a,b,c\)를 주어진 양에, \(x,y,z\)를 미지량에 쓰는 방식은 데카르트의 1637년 “기하학”(La Géométrie)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이후 널리 표준화되었다. 비에트 자신은 이와 다른 문자 체계를 사용했다.[Descartes1954]]

비에트는 수를 사용해 계산하는 종래의 방식을 수적 로지스티케(logistice numerosa), 알파벳 문자로 나타낸 ‘종 또는 사물의 형식’으로 계산하는 새 방법을 종적 로지스티케(logistice speciosa)라고 구분했다. 비에트의 문자는 수치화되지 않은 기하학적 크기의 상대적 값을 나타냈고, 계산은 길이, 넓이, 부피 같은 차원을 보존해야 했다. 그의 핵심적인 새로움은 미지량뿐 아니라 값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주어진 크기까지 문자로 나타내어 같은 계산 안에서 다룬 데 있었다.

그 차이를 현대적인 표기로 재구성해 보자. 다음 식은 비에트 원문의 문자 그대로의 전사가 아니라, 그의 문자계수 방법을 오늘날의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나타낸 예이다. \[ A^2+BA=D^2 \] 여기서 \(A\), \(B\), \(D\)를 길이로 생각하면 모든 항은 넓이 차원을 가져 비에트가 요구한 동차성을 만족한다. 양의 크기를 구하는 계산을 현대식으로 쓰면 \[ A=\sqrt{\left(\frac{B}{2}\right)^2+D^2}-\frac{B}{2} \] 가 된다. \(B\)와 \(D\)의 구체적 크기가 정해지기 전에도 관계를 변형할 수 있다는 점이 문자계수 계산의 힘이다.

비에트 이전의 수학자들에게 일반적 절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대 기하학과 바빌로니아, 그리스, 아랍 대수 전통에도 특정 사례를 넘어 반복 적용되는 정리와 알고리즘이 있었다. 비에트의 의의는 미지량과 미정의 주어진 양을 함께 문자화하여 여러 문제의 공통 구조를 하나의 계산 과정 안에서 명시적으로 조작할 수 있게 한 데 있다. 이전에 말과 반복 절차로 표현되던 일반성은 새로운 문자계산을 통해 한층 압축적이고 재사용 가능한 형태를 얻었다.[Oaks2018][KatzParshall2014]

데카르트, 기하학과 대수를 잇다

비에트의 문자적 분석을 이어받은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1637년 “방법서설”의 부록 “기하학”(La Géométrie)에서 기하 문제의 주어진 선분과 미지의 선분을 문자로 놓고, 그 관계를 방정식으로 바꾸어 분석하는 ‘기하적 계산’을 제시했다. 이 작업은 오늘날 해석기하학이라 부르는 방법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Descartes1954][Domski2025] 다만 “기하학”에는 오늘날 교과서의 서로 수직인 두 좌표축, 부호 있는 좌표, 순서쌍으로 이루어진 좌표평면이 그대로 등장하지 않는다. 파푸스 문제에서 데카르트가 \(x\)와 \(y\)로 둔 것은 주어진 그림 속에서 택한 두 변하는 선분이며, 그 기준 방향은 비스듬할 수도 있었다.

데카르트의 방법을 현대적인 용어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문제가 풀렸다고 가정하고 주어진 선분과 미지의 선분에 문자를 붙인다. 곡선 위 점을 \((x,y)\)로 나타내는 것은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현대적 재구성이다.
  • 도형의 조건과 선분 사이의 관계를 대수적 방정식으로 표현한다.
  • 방정식을 분석하여 미지 선분의 관계를 얻고, 다시 그 선분이나 곡선을 기하학적으로 작도한다.

따라서 데카르트에게 방정식은 그림을 완전히 없애는 대체물이 아니라 기하학적 분석과 작도를 매개하는 도구였다. 그는 곡선의 구성 방식과 그것을 나타내는 유한한 대수 방정식을 연결하고, 방정식의 차수에 따라 곡선을 분류했다.[Descartes1954][Bos1981] 이를 추상화의 관점에서 보면, 특정 그림의 우연한 크기와 위치보다 여러 도형이 공유하는 관계를 하나의 방정식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보다 수십 년 뒤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는 1666년 “조합술 논고”에서 시작해 1670–1680년대의 여러 초고에서 보편 표의문자(characteristica universalis)의 구상을 발전시켰다. 복합 개념을 더 단순한 개념들로 분석하고 그 결합을 기호로 나타내려는 이상이었으며, 이 표기와 결합될 추론 계산(calculus ratiocinator)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추론을 검사하거나 계산하게 하려는 계획이었다.[Leibniz1989] 두 표현은 라이프니츠의 단편들에서 긴밀히 얽히지만 완전히 같은 뜻의 완성된 한 체계를 가리키지는 않으며, 그는 생전에 이 계획을 하나의 보편 언어로 완성하지 못했다.

이 구상은 후대에 형식논리의 선구적 이상으로 자주 회고되었고 프레게 등도 라이프니츠의 목표를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라이프니츠의 주요 논리 초고 가운데 상당수는 19세기 이후, 일부는 20세기 초에야 널리 알려졌다.

형식 불역의 원리

문자 표기가 널리 쓰인 뒤에도 기호 조작의 정당화는 흔히 수나 기하학적 양의 해석에 기대었다. 19세기 영국의 대수학자들은 기호의 결합 법칙 자체를 명시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조지 피콕(George Peacock)은 1830년 초판 “대수학 논고”에서 산술대수학과 기호대수학을 구분했고, 제2판의 두 권인 1842년 “산술대수학”과 1845년 “기호대수학과 위치기하학에의 응용”에서 이 구상을 수정하고 확장했다.[Peacock1842][Peacock1845][Pycior1981]

  • 산술대수학(arithmetical algebra): 문자는 우선 양의 정수와 같은 산술적 수량을 나타내고 연산 기호도 보통 산술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a-b\)에는 \(a>b\) 같은 값의 제한이 붙는다.
  • 기호대수학(symbolical algebra): 연산의 뜻을 미리 산술적 뜻으로 고정하기보다 기호 결합의 법칙을 정의로 삼는다. 산술대수학은 이 법칙을 ‘제안’하지만 논리적으로 증명하지는 않으며, 얻어진 기호 형식에는 뒤에 여러 해석을 줄 수 있다.

형식 불역의 원리(Principle of the permanence of equivalent forms)
산술대수학에서 기호들이 형태상 일반적이지만 값에서는 제한되어 있을 때 동치인 대수적 형식은, 기호들이 값에서도 일반화될 때에도 동치로 유지된다.[Peacock1845]

피콕에게 산술은 기호대수학의 법칙을 제안하는 원천이지만, 그 법칙을 논리적으로 보증하는 유일한 근거는 아니었다. 또한 모든 수치적 우연을 무조건 일반화하라는 명령도 아니었다. 피콕은 일반적 형식으로 표현되고 정의 가능한 과정으로 얻어지며, 특정 값에서 식의 구성이 달라지지 않는 경우 등 적용 조건을 두었다.[Peacock1845][Pycior1981]

지수법칙을 다시 세우다

양의 정수 \(m,n\)에 대해 \[ a^m\cdot a^n=a^{m+n} \] 은 거듭제곱을 반복 곱셈으로 정의하면 증명된다. 피콕 자신도 이 형식이 지수가 양의 정수로 제한된 산술대수학에서 더 일반적인 지수로 옮겨가는 예를 들었다.[Peacock1842] 그러나 영속 원리는 새 거듭제곱의 존재와 유일성을 보장하는 정리가 아니라, 확장된 정의가 만족하기를 바라는 조건을 제안한다.

  • \(a\neq0\)이고 \(m\)이 양의 정수일 때 \[ a^m\cdot a^0=a^{m+0}=a^m \] 에서 \(a^m\)을 소거하면 \(a^0=1\)을 얻는다. 이 논증은 \(0^0\)을 정의하지 않는다.
  • \(a\neq0\)일 때 \[ a^m\cdot a^{-m}=a^0=1 \] 이 유지되도록 \[ a^{-m}=\frac{1}{a^m} \] 으로 정의한다.
  • 실수 범위에서 모든 유리수 지수를 한꺼번에 다루려면 \(a>0\)으로 제한한다. \(a^{1/2}\)에는 \[ \left(a^{1/2}\right)^2=a \] 뿐 아니라 \(a^{1/2}>0\)이라는 조건을 함께 부여하여 \(a^{1/2}=\sqrt a\)를 유일하게 정한다. 곱셈 법칙만으로는 두 근 \(\pm\sqrt a\) 가운데 양의 근을 선택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r=p/q\in\mathbb{Q}\), \(q>0\)이면 \(a^r=(a^{1/q})^p\)로 정의하되 \(a^{1/q}\)를 \(a\)의 유일한 양의 \(q\)제곱근으로 취한다. 그리고 \(p/q\)의 표현을 바꾸어도 같은 값이 나오는지와 지수법칙이 유지되는지를 별도로 증명해야 한다. 실수 지수 \(\alpha\)까지 확장할 때에는 유리수 지수의 극한이나 \[ a^\alpha=\exp(\alpha\log a) \] 를 이용해 정의하고, 극한의 존재와 선택에 대한 독립성 및 연산 법칙을 다시 증명한다.[Tao2016]

이 일련의 전개는 ‘기존 법칙을 보존하려면 새 기호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동기화이다. 대상의 성질을 관찰해 법칙을 얻는 방향뿐 아니라, 보존하고 싶은 법칙을 먼저 정하고 그 법칙에 맞는 확장을 구성하는 방향도 수학에서 중요해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해밀턴, 보존할 법칙과 버릴 법칙

형식 불역의 원리는 익숙한 산술 법칙을 더 넓은 기호 영역에서도 유지하려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중엽에는 어떤 법칙은 보존하면서 다른 법칙은 포기한 새로운 대수 체계도 등장했다. 윌리엄 로원 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이 1843년에 발견한 사원수(quaternion)는 그 결정적인 초기 사례 가운데 하나다.[Hamilton1844]

해밀턴은 복소수를 두 실수의 순서쌍으로 해석한 자신의 이론에 대응하여 공간의 세 성분을 나타내는 ‘삼중항(triplet)’의 이론을 여러 해 동안 찾았다. 그는 \(a+bi+cj\) 꼴의 삼중항을 생각하고 \(i^2=j^2=-1\)로 두었다. 덧셈은 성분별로 정의할 수 있었지만, 두 삼중항의 곱을 다시 같은 세 성분으로 나타내면서 곱의 모듈러스가 두 인자의 모듈러스의 곱이 되게 하는 규칙을 찾지 못했다. 해밀턴이 보존하려 한 핵심 조건은 \[ \lVert xy\rVert=\lVert x\rVert\lVert y\rVert \] 이라는 모듈러스 법칙이었다. 이는 곱셈이 길이를 그대로 보존한다는 뜻이 아니라, 곱의 길이가 두 길이의 곱이 된다는 뜻이다.[Hamilton1844][RiceBrown2021]

[해밀턴 자신은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3차원 체계가 불가능하다는 일반 정리를 증명하지 않았다. 유한차원 결합적 실수 나눗셈대수에 관한 프로베니우스의 분류와 곱셈적 양의 정부호 노름에 관한 후르비츠의 결과 등은 19세기 후반에 확립되었다. 현대적으로는 해밀턴이 찾던 성질을 갖춘 3차원 실수 노름 나눗셈대수가 존재하지 않지만, 이 후대의 정리를 해밀턴 자신의 증명으로 소급해서는 안 된다.[RiceBrown2021][Baez2002]]

1843년 10월 16일, 해밀턴은 아내와 함께 더블린의 왕립운하를 따라 걷다가 브룸 다리(Broome Bridge, 그의 편지에서는 Brougham Bridge) 부근에서 해법을 떠올렸다. 그가 훗날 아들에게 보낸 회고 편지에 따르면, 그는 지나가던 다리의 돌에 칼로 다음 식을 새겼다. \[ i^2=j^2=k^2=ijk=-1 \] 이 관계식에서 정의되는 사원수는 \[ q=a+bi+cj+dk \] 꼴이며, 실수 위의 4차원 벡터 공간을 이룬다. 이 가운데 \(bi+cj+dk\)인 순허수 부분은 3차원 공간의 벡터와 대응한다. 사원수의 곱셈은 결합법칙과 분배법칙을 만족하고 항등원 \(1\)을 가지며, 모든 0이 아닌 원소는 역원을 갖는다. 또한 \[ q^{-1}=\frac{\overline q}{\lVert q\rVert^2},\quad \lVert pq\rVert=\lVert p\rVert\lVert q\rVert \] 가 성립한다. 그러나 \(ij=k\)인 반면 \(ji=-k\)이므로 곱셈의 교환법칙은 성립하지 않는다. 현대 용어로 사원수는 실수 위의 4차원 결합적 비가환 노름 나눗셈대수다.[Hamilton1844][Baez2002]

해밀턴이 익숙한 교환법칙을 포기한 이유는 명확했다. 불필요한 교차항을 제거하고 곱셈의 모듈러스 법칙을 지켜내기 위한 수학적 선택이었다. 사원수는 곱셈이 교환적이지 않아도 결합법칙, 분배법칙, 역원과 곱셈적 노름을 갖춘 일관된 대수 체계가 성립할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비슷한 시기인 1847년 조지 불(George Boole)은 “논리의 수학적 분석”에서 상징대수의 방법을 명사류(class)와 논리적 추론에 적용했고, 오거스터스 드모르간(Augustus De Morgan)은 “형식 논리학”에서 전통적인 삼단논법을 분석하고 확장했다. 불은 1854년 “사고 법칙 연구”에서 \(x^2=x\) 같은 법칙을 포함하는 자신의 논리 계산을 더 발전시켰다. 이 작업들은 수가 아닌 대상을 대수적으로 다룬 중요한 사례이지만, 불과 드모르간이 오늘날 교과서에서 소개한 형태의 ‘불 대수’를 완성한 것은 아니다.[Boole1847][Boole1854][DeMorgan1847][BurrisLegris2022]]

수를 버리고 남은 것

서로 다른 시대와 전통의 대수는 병존하고 교차했으며, 새 표기법이 등장했다고 해서 기존의 말, 그림, 수 해석이 즉시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 점을 전제로 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디오판토스와 알콰리즈미는 서로 다른 시대와 전통에서 축약 표지와 말로 된 규칙을 사용했다. 두 사람의 작업은 ‘일반성’이 문자계수 공식으로만 표현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 비에트는 미지량뿐 아니라 아직 값이 정해지지 않은 주어진 크기까지 문자로 나타내어, 여러 문제의 공통 관계를 하나의 계산 안에서 조작할 수 있게 했다. 다만 그의 문자는 차원을 지닌 기하학적 크기와 결부되어 있었다.
  • 데카르트는 기하학적 관계를 방정식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크게 발전시켰지만, 그림과 작도를 폐기하지는 않았다. 대수와 기하의 연결 방식이 달라졌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 피콕은 산술적 해석과 기호 결합 법칙을 구별하고, 산술에서 성립하는 형식을 더 넓은 영역으로 옮기는 방법을 명문화했다. 그러나 영속 원리는 확장의 일관성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정리가 아니었다.
  • 해밀턴의 사원수는 곱셈의 교환법칙을 만족하지 않으면서도 결합법칙, 분배법칙, 역원의 존재성과 노름의 성질을 유지하는 체계를 제시하여, 익숙한 산술 법칙들을 서로 분리하여 검토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를 추상화의 관점에서 다시 읽으면 다음과 같은 변화가 보인다.

  • 특정한 수치 대신 아직 정해지지 않은 양을 문자로 나타내어 여러 사례의 공통 관계를 한꺼번에 다룰 수 있게 되었다.
  • 기호가 무엇을 나타내는가와 기호가 어떤 법칙에 따라 결합하는가를 구별하면서, 같은 형식에 서로 다른 해석을 부여할 가능성이 열렸다.
  • 익숙한 산술 법칙들이 언제나 하나의 불가분한 묶음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서로 다른 법칙의 조합은 서로 다른 대수적 구조를 만들 수 있지만, 그러한 선택은 체계의 일관성, 실제 모형의 존재, 그리고 해결하려는 문제에 의해 제약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대상의 구체적인 성질보다 그 대상들이 만족하는 관계와 법칙을 앞세운다면, 공리들의 역할과 그 공리를 만족하는 서로 다른 해석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치환과 군, 체와 아이디얼, 선형대수, 비유클리드 기하학 등 19세기의 다채로운 흐름이 함께 얽히며 서서히 그 형태를 갖추어 나갔다.[KatzParshall2014][Kleiner2007][Corry2004][GrayFerreiros2025]

힐베르트의 1899년 “기하학의 기초”는 이 변화에서 특히 영향력 있는 전환점이었다. 그는 점, 직선, 평면의 구체적 실체를 설명하기보다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공리로 규정하고, 기본 용어에 서로 다른 해석을 부여하여 공리계의 성질을 연구했다.[Hilbert1902] 다음 글 4부에서는 이러한 여러 역사적 배경 속에서 힐베르트의 공리적 방법이 무엇을 새롭게 했는지 살펴볼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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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이슬비, 2026. designeralice@daum.net.

수학적 추상화

  1. 수학적 추상화의 기본 개념
  2. 초기 수학에서의 암묵적 추상화
  3. 대수적 기호와 연산 법칙
  4. 공리적 방법에 의한 추상화
  5. 수학적 구조와 범주론
  6. 벡터공간과 선형 구조
  7. 거리공간과 위상공간
  8. 측도공간과 확률공간
  9. 수학적 추상화의 인지와 학습
  10. 현대 수학 연구에서의 추상화
  11. 수학적 추상화의 방법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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